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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노종균(盧鍾均) 1894~1939
경찰이력 의경대 대장
인물소개 제2의 김구, 특무공작을 전개하다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노종균(盧鍾均) 1894~1939

  황해도 안악(安岳) 출신,

1921년 동아일보 안악지국 판매부장으로 활동 중, 동아일보 기자 오면직(吳冕稙) 등과 함께 동년 11월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 망명 후 19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 김구(金九)의 명령에 따라 오면직과 함께 모스크바 지원 군자금 횡령 혐의로 지목받고 있던

임시정부 비서장 김립(金立)을 권총으로 처단하였다.


  1922년 김구 등이 설립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특별회원으로 선정된 그는 동년 12월 북경학병단(北京學兵團)으로 파견되어

1년 간 군사훈련교육을 이수한 뒤, 1924년 1월 상해로 돌아오다가 상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의해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출옥 후 그는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 의경대장(義警隊長) 및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 간부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와 동포사회를 수호하는 등

김구의 신임을 받아 제2의 김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 후 1931년 김구와 함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하고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거사 등을 지원하였다.
1934년 2월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소재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洛陽分校) 내에 한인특별반이 조직되자,

한인특별반의 교육간부로 학생들을 관장하였다.

  또한 동년 12월에는 낙양군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을 조직하여

중대장 및 조사부장에 선임되어 항일 특무활동 공작원을 양성하는 데 실질적 담당자 역할을 하였다. 


  그 후 1935년 한인애국단원인 김창근(金昌根)에게 상해 일본총영사관 등정(藤井) 경부를 암살 처단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동년 말경 오면직 등과 함께 남경에서 수 차 회합을 갖고 1936년 7월 비밀결사 맹혈단(猛血團)을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그러다 1938년 1월 상해에서 친일파인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 회장 이갑녕(李甲寧)을 저격·처단하는 등

특무활동을 전개하는 도중 상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황해도 해주 옥중에서 미결수로 옥고를 치르던 중 1939년 6월 옥사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