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나창헌(羅昌憲) 1896~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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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력 | 경무국장 |
인물소개 | 의열투쟁의 선봉에 서다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
평안북도 희천(熙川) 출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재학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대표로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구금되었다. 1920년 1월 상해로 탈출하여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을 도와 대동단 이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노무용(盧武用) 등 7인과 같이 철혈단(鐵血團)을 조직하고 그 단장이 되어 “철(鐵)과 혈(血)로써 왜적을 배제해야 된다”는 의열투쟁론을 주창하였다.
상해 일대에 거주하는 한국 동포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는 등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교민단의 의사원으로 선출되어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을 도와 민주공화제 정착과 그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6년 경무국장 재임시절 병인의용대장을 역임하면서 한인 동포들을 탄압하던 상해 일본 총영사관에 세 차례의 폭탄의거를 시도하여 건물 일부를 폭파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33년 1월에는 흥사단(興士團) 원동대회에 참가하여 선우혁(鮮于爀)과 함께 제6반에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동년 7월에는 비밀리에 상해로 돌아와 병인의용대를 부흥시키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36년 6월 그가 경영하던 만현병원(萬縣病院)에서 신병으로 영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