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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찰

인권으로 in - 2021. 3
등록일 2021-03-31 10:54:51
부서명 본청 감사 인권보호
조회수 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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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인권으로 In
        경찰청 인권센터사람x인권경찰
        경찰 동료개입의 필요성과 나아갈 길 주혜선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원장 ((심리학 박사, Ph.D)
        본 원고는 2020년도 경찰청 정책연구용역 한국형 동료간 개입 제지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방안 연구 에서 제안하는 경찰 동료 개임 프로그램 이면의 메시지를 공유하고자 작성되었습니다.
        당신은 경찰이 되고 제복을 처음 입던 순간의 설레임을 떠올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제복을 입은 채 서 있는 당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응원하던 나의 소중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눈빛을 떠올릴 수 있는가? 동료와 커피 한잔을 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크게 한 숨 고르는 순간의 느낌을 떠올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제복과 함께 현장에서 만났던 수없이 많은 시민들 중에서 당신에게 눈을 맞추고 너무 고맙다고 여러번 고개숙여 인사하던 그 사람 앞에서,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보람을 느꼈던 그 찰나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가? 하루의 일 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집밥과 가족이 함께하는 그런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안도와 평온함을 느끼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가? 이런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당신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정체성의 핵심 구성요소들이다.
        만일 당신이 경찰이라는 옷을 입고 그 정체성과 함께 일상을 살아오면서 누리던, 그리고 이제는 매우 익숙해서 특별하지 않은 하루하루의 일들이 만일 어느날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그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2020년 5월 25일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은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안타까운 사건이 다. 주변의 많은 행인들은 경찰에게 목을 누르지 말라고 하였지만 함께있던 동료 경찰관들은 오히려 행인들을 제지하였다.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은 조지 플로이드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 었다. 만일, 현장에 있던 동료경찰관 3명 중에서 단 한명의 경찰관이라도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는 동료 경찰을 향해 “지금 당신은 선을 넘고 있고, 그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고 그 행 동을 제지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오늘 하루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RIPS GEORGE FLOYD
        비극을 예방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예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러한 충격적인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들 즉, 유가족과 고인의 지인을 비롯해 현장의 목격자, 경찰 조직, 사건에 대한 영상을 목격한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결과에 직접적으로 관 여한 4명의 경찰관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 즉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유가족과 고인의 가까운 사람들은 고인과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의 소소한 일상을 잃어버린다. 그 속에 고인에 대한 기억은 비극적 죽음을 중심으로 떠올리게 되면서 고인과 함께한 일상 에서 있었던 즐거웠던 일들이나 생전에 고인이 무엇을 좋아했던 사람인지, 함께하는 순간 무 엇이 소중하고 좋았는지에 대한 크고 작은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이제 고인을 잃고 난 이후 고동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고인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기억들과 함께 유가족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붙이고 이제는 그 사람이 없는 낯선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또한 그 날 그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했던 수많은 행인들은 그때의 괴로운 기억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화, 장소, 사람, 활동을 피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지낼 수도 있다. 세상이 위험천만하고 내가 위험에 빠지면 누군가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감각 또한 잃어버릴 수도 있다. 특히, 경찰과 같이 내가 위험에 따지면 나를 도와줄거 라고 기대되는 사람들로 인해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내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거라는 기대를 잃기 십상이고 일상에서 위험이 계속 진 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사건의 영상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본인이나 가까운 타인이 이전에 누군가로 인해 받았던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로 인한 상처가 건드려질 수 있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기대나 믿음들이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여된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찰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동료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서 깊은 죄책감과 수치 심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조직 내 구성원들 간에도 기존이 하위 집단간 묻어놨던 갈등의 요소들이 함께 표면 화되면서 집단 내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무엇보다도 사건의 행위 당사자인 경찰관들은 인생을 바꿔버린 그날의 그 순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리고 아주 긴 시간 동안 떠올리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 현장에서 고인이 사망하는 과정, 그 일을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그 직후에 생긴 큰 변화 속의 충격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일상에서 불쑥불쑥 떠오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기억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죄책감과 수치심, 끝도 없이 찾아오는 분노와 무력감이 함께 따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하루아침 범죄자가 되는 바뀌어 버린 정체성으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나란 사람에 대한 익숙했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일상 소소한 삶의 순간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내가 꿈꾸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고, 내가 가졌을 삶의 어떤 가능성과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내가 실현할 수 있었던 삶의 가능성들에 대한 상실은 이후 깊은 애도와 함께 고동으로 찾아오게 된다. 그 날 현장의 피해자도 사망하였지만, 이전의 나 또한 죽은 것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파괴와 상실은 깊은 정신적 상흔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경찰의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주변사람들로 부터 주목을 받게 되면서 많은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아빠와 함께하던 소소한 일상의 순간을 자녀는 일상에서 패앗기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입학식과 졸업식 등 소중한 순 간에 아빠의 빈자리가 주는 그리움과 슬픔도 눌러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경험은 철저히 묻지 않거나 이야기 하지 않으며 단절되는 고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가족에게 던져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안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트라우마를 남기는 하나의 사건은 그날 거기에서 끝나지 않으며, 그 사건의 영향은 사건에 직 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짧게는 수 주, 길게는 수십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결과들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가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짚어보려 한다.
        함께하는 인권 경찰Ervin Staub는 적극적 주변인(Active Bystander)의 개념을 소개하며 적극적 주변인이 폭 력의 위해가 있는 상황이나, 위협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변사람들이 적극적 으로 개입하여 행위자의 행동을 중단시키거나 예방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적극적 주변인 이론은 폭력의 현장에서 이를 예방함으로써 관련된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양한 현장에서 소개되며 적용되어 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경찰활동을 하는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오는데, 대표적인 시도로는 미국 뉴올리언즈 경찰국의 EPIC(Ethicall Policing is Courageous) 모델이 그 중 하나이다. EPIC은 계급과 무관하게 동료 경찰관이나 상사에게 그렇게 하면 상대방 뿐만 아니라 당신과 당신 가족 그리고 경찰관으로서 직업도 위태로울 수 있어요.라고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 여하고 있다. 해당 지역 경찰관들은 내가 선을 넘는 잘못된 행동을 하려고 하면 내 동료는 지위 막론하고 어느 누구든 나를 제지할 수 있고 이것에 동의한다는 관점을 공유한다. 또한 EPIC을 적용하려는 노력은 현장 경찰관들에 의해서 그 실효성이 검증되었고, 지역사회에서 경찰관이 더 많은 신뢰를 얻도록 하는데 기여하게 되면서 다른 주에도 확장되고 있면서 동료 개입이 하 나의 조직 문화로 자리잡아 나아가고 있다.
        EPIC
        ETHICAL POLICING IS COURAGEOUS
        It is curious that physical courage should be so common in the world and moral courage so rare.
        - Mark Twain
        만일 당신이 직무 수행의 현장에서 선을 넘는 동료의 행동을 제지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면 어떤게 마음속에 떠오르는가? 만일 상대 동료가 상급자라면? 동료의 행동을 제지한다는 것은 이것을 하려는 사람에게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다.개입을 하려는 사람은 인사평정에 불이익에 대한 염려나 해당 동료와 갈등으로 인해 조직 구성원들과의 유대감이 손상될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불편한 마음에 맞딱드리게 된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커피 한잔 하는 일상에서 소외될 것에 대한 두려움, 함께 순찰을 돌 때 차 안의 적막함과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걱정, 조직 문화를 헤치는 배신자로 오해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마음의 장벽들을 만난다.
        동료가 나의 행동을 제지할 때, 그 용기를 내기까지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의 장벽을 넘었을 동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동료의 용기는 내가 거울 앞에 섰을 때, 스스로를 비난 하고 자책하지 않으며, 자긍심을 잃지 않게 해줄 것이다. 또한 이 제복을 입은 내가 내 조직에 함께한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내 동료는 아주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것 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서 현장의 경찰관 4명은 서로를 지켜줄 수 없었지만, 그리고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 깊은 상실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고 있겠지만, 아직 당신의 일상에는 그것들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또 용기가 있다. 그리고 그 용기를 일선 현장으로 옮기는 것을 돕고자 국내에서 2020년 개발된 경찰 동료개입(Peer Intervention) 프로그램은 당신 에게도 열려있음을 기억해주고 함께하길 바란다. 한국의 경찰 동료개입(PI)은 동료개입의 주요 이론들과 국내 경찰관 대상 기초연구를 통해 경찰 동료개입이 필요한 구체적인 상황들을 정 의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들도 함께 제안하고 있다.
        언젠가 당신의 동료가 큰 용기와 함께 당신을 제지하려할 때, 동료가 지켜려는 에쓰는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한번 더 바라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또한 동료의 용기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의 용기도 함께하길 바란다.
        함께하는 인권경찰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것이 무조건 그 쪽 의견에 동의하거나 당신이 들리고 그 사람이 옳다고 말하라는게 아님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입장, 그 사람이 옳다고 믿고 있는 사실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조나단 로빈슨동료의 개입을 받아들인다는 것
        개입, 사전적으로는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끼어드는 것을 말한다. 경찰관은 태생 적으로 타인의 일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이 과정에서 개입의 정당성 시비에 휘말리 기도 한다.
        몇 해 전 일선 경찰서 지구대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평소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동료 경찰관 백모 경위가 있었다. 가끔 공무집행방해 사범을 검거하는 것을 보고 다친 곳은 없는지 피해에 대한 공감을 건네면서도, 같은 상황에서 마찰을 피할 수 있다면 가급적 그러한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전달하곤 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관내 모병원에 112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욕설을 하였다는 이유로 해당 병원 의사를 모욕죄의 현행범으로 수갑을 채워 체포하였다. 사건은 절차를 통해 진행하였지만 해당 의사는 수갑 착용시 입었던 부상으로 정상적인 진료와 수술을 하지 못한다. 면서 자신을 체포한 경찰관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검찰청에 고소를 하고, 청와대 신 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고 민사소송을 제기 하기에 이르렀다.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112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관, 병 원 내에서 체포상황을 목격한 시민, 순찰차 블랙박스, 지구대 연행 시 소내에 있었던 경찰관. 경찰서로 연행 시 상황 전반을 확인하고 타임테이블을 만들어 정리하였다. 그리고 당시 사건에 참여하거나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 뿐 아니라 목격한 시민들의 진술도 정리하여 법률적 검토를 거쳐 국가인권위원회에 자료를 제출토록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 동료 경찰관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우리 지구대장 왜 저래? 별 것도 아닌 일을 왜 이리 키워? 라며 혜당 경찰관이 그냥 처리하면 될 일을 침소봉대 한다는 의견이 들려왔다. 평소 이러한 개입에 익숙치 않는 탓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검찰에서 백경위를 상대로 출석요구서가 송부되어 온 것이다. 동 료들은 정말 무슨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고, 불안해 하는 백경위에게 그간 준비한 자료가 충실하니 당당하게 조사받고 오라며 지지해줬다.
        함께하는 인권경찰LAW
        이후 타 경찰서로 발령 받아 근무하던 중, 백경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과 관련한 국가 인권위원회 진정은 각하, 검찰청 고소는 불기소로 결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자신으로 인해 동료들이 피해를 입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원망도 했었지만, 지 나고 보니 그것이 동료를 위하고 경찰 조직을 위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 었다. 서로 덕담을 건네며 통화를 끝냈다.
        일선 현장에서 민원을 받거나 문제가 생기면 민원 유발자로 취급하고 그 처리를 오롯이 해당 당사자가 처리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러한 관행이 조직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심리적 고립감을 유발케 하고 정당한 경찰 활동을 위축시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 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타인의 일상에 개입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찰관의 활동과 그런 경찰 관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에 개입을 한 나의 행위는 성격상 매우 다르다. 하지만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는 의미에서 다르지 않다. 그 개입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용기 있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경찰청 인권센터는 2019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협력 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마침 올해부터는 법무담당관실과 협조하여 법률상담과 조력까지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강하 였다. 현장 동료들이 고동과 아픔을 딛고 경찰관으로서 온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경찰 관서 차원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때다.
        백경위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피고의 자격으로 민사소송에 임하고 있다.
        글. 박원식 인권보호계장
        함께하는 인권경찰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필름 안 인권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MINARI,
        정이삭, 2020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부자가 되어 가족을 먹이 살리겠다는 아비지의 계획만을 믿고 낯선 땅 아간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지막 희망인 아칸소 농장에 심착하는 아버지 제이과, 부자가 될 필요 없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들이 함께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어머니 모니카는 후지고 열악한 농장 위의 진테이너 위에서 사사진진 부딪히며 다루고, 둘 다 생제를 위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남거진 큰딸 앤 과 심장이 약한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은 결국 자신들을 위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할머니 순자 씨의 보살림을 받게 된다. 이렇게 다섯 식구가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모여 살아가게 되지만, 결코 일상이 순탄치만은 않다.
        1980년대 한국. 이전 세대의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년들의 열망은 그 터를 완전히 옮기고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완벽히 새롭게 시작하자는 꿈으로 이어졌다. 수영장이 딸린 커다란 이층집, 광이 나는 길다란 포드 머스탱, 양복을 차려입고 파티를 여는 사람들, 고급 샴페인과 스테이크. 헐리웃 영화에서만 보던 그 광경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그들을 움직였다. 그 시대의, 그러나 지금 현 시대에도 다를 바 없는 가장의 무게를 진 아버지 제이콥은 그 성공을 움켜쥐기 위해 그렇게 손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았다.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로움 그리고 고단함과 싸우는 아내 모니카의 버팀목 역할과, 어린 두 자식들의 울타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도 그는 늘 믿고 있었으리라,
        가족은 영원할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켜줄 것이고, 늘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희생이 계속되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없어질 때, 남는 것은 돌 이킬 수 없는 체념과 후회 뿐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그렇게 부모에게 여력이 없어 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 아칸소로 온 할머니 순자씨는 제이콥과 어린 아이들에게는 불청객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고추장 냄새, 된장 냄새, 흙과 나무 냄새, 마늘 냄새.... 가난한 자신들의 땅, 빈약한 뿌리를 키우는 메마르고 좁은 땅을 상기시키는 냄새를 온 몸에 지고 온 순자 씨를 그들은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쿠키와 파이, 파스타와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멋들어지고 인자한 억양으로 영어를 쓰는 미국, 할머니가 아닌 순자 씨는 그렇게 유치한 어린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지만, 순자 씨는 역시 한국 여자다. 꿋꿋하게, 내 새끼들을 감싼다.
        제이콥이 낯선 미국 땅에 심은 한국 농작물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수확을 마친다. 그 즈음 해서 순자 씨가 숲 속에 아무렇게나 심어 놓은 한국 미나리들도 푸르게 자라난다.낯선 땅에 뿌리내린 희망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가족의 의미
        아내의 고동, 딸아이의 외로움, 아들의 건강과 맞바꾼 농작물들을 곳간에 가득 채우고, 막 판매 계약을 마쳤을 때, 그는 이제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어, 모니카의 이별 통보에도, 그는 모든 것이 잘 되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했다.
        순자 씨의 실수로 곳간과 농작물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그가 이제 막 두 손을 가득 피 한가득 움켜쥐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모래알처럼 스러져내리고 나서야 그는 진정 자신이 두 손에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모든 것은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까만 재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한 쪽에서 세게 잡으면 다른 한 쪽이 더 세게 잡아주는 것은 단 하나, 가족들의 미나 리같은 작은 손 뿐이었다. 제이콥의 마지막 남은 희망은 그렇게 사라졌고, 가족들과의 갈등도 모두 헛된 재로 돌아간다. 함께 있을 수밖에는 없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순자 씨가 심은 미나리처럼, 그들은 뒤엉켜 자라나는 운명인 것이다.
        정이삭 감독이 영화 제목을 미나리로 정한 의미도 그렇게 관객들을 관동한다. 미나리는 땅 위에 씨를 뿌려 심어만 두어도 잘 자라난다고 한다. 어느 낯선 땅 위에서도 오직 살아남 겠다는 의지만을 가지고 버텨낸 우리 한국인들의 뒤엉킨 희망과, 자라고 자라 거대하고 푸 르른 미나리 밭을 일궈낸 우리 한국인들에 대한 찬사. 숲 속 어느 구석진 곳에 할머니 순자 씨가 심어 둔 미나리처럼, 터는 작고 그늘져도 매일 정성으로 돌보는 덕에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넓히고 크게 뒤엉킨다.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모 영화와 더불어,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과 정서를 담아낸 우리 한국 영화들에 전 세계가 귀를 기울이는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을까, 국가와 문화, 공 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의 마음이 동하는 삶의 한 영역, 가족, 그리고 함께의 가치. 아무리 쓸모있는 생물이어도 벌판 위에 혼자 피어나고 살아간들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함께 뒤엉켜 수분과 양분을 나누며 줄기를 서로의 어깨에 맞잡는 것, 어떤 바람과 폭풍에도 단단히 맞서는 것. 홀로 고매한 나무는 바람에 부러지지만 함께 엉킨 미나리는 떡 없을 테니 말이다.
        인권 소식지 기자 글, 파주경찰서 운정 1파출소 유진산 순정 ● 독서와 영화 후기는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알다x문화
        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독서 에세이 책장에서 펼친 세상 진짜 90년생 공무원이 왔다.
        나는 꼰대일까? 90년대생이 온다 임홍택, 2018 
        90년생에게 공무원이란 약 3년간의 공무원 수험생활에서 신세를 졌던 모 강사의 한국사 카페에는 공직생활의 자 유함이라는 게시판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이곳에선 자유함, 보다는 애환을 토로하거나 공직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만은 않다라는 말을 적잖게 볼 수 있다. 가시밭길 같던 수험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공무원이 된 그들이 저런 말을 하는 건 왜일까.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조사한 2017년 인사혁신처의 자료에 따르면 안정적, 정년 보장, 연금과 같은 긍정적인 답변이 가장 많았지만, 다음으로는 철밥통, 무사안일, 복지 부동과 같은 부정적인 답변이 차지한 걸 보면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사회초년생으로 나선 90년생, 소위 밀레니얼 세대의 인식도 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그들이 어째서 공직생활의 자유로움을 말하지 않는 걸까. 90년생이며, 사회초년생이자, 공무원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어떠한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사실 문맥상 자유로움이 맞겠지만 카페 게시판의 이름을 그대로 적는다.
        바람직한 공무원 인사운영을 위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 보고서 * 1980년대 초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90년생 공무원이 온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대사가 나온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뜻인 이 구절을 가져온 이유는 공무원인 이상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직 사회에 들어올 90년생들, 즉 90년생 공무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워라밸*, 일가양립 은 공무원만이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이 원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것 만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신문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공무원 수험생 413명에게 응시 동기를 물은 설문 조사의 결과는 꽤 충격적 이다. 그들 중 76%가 직업 안정성과 보수라 답하였고 겨우 2.9%만이 국가에 대한 사명감 이라고 답을 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2020년 11월, 정부혁신어벤져스에서 펴낸 책자 90년생 공무원이 왔다」에서 여러 분,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가 워라밸 딱 한 가지뿐 이라면, 당장 펜을 내려놓으셔도 됩 니다.**라는 말이 나온 것은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90년생 공무원으로서 벌써 그런 말을 듣기엔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듯 지금, 이 순간 에도 나를 포함한 90년생 공무원들은 선배 공무원들을 보고 배우며 앞으로 공직사회를 지탱 해갈 나무로 자라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단어를 한국식으로 줄인 표현
        **90년생 공무원이 온다 나오는 말, 하나 
        *** Office changes manners 영어 속담90년생 공무원, 실제로 왔습니다.
        지난 2월 8일, 경찰청에 있는 동기 아홉*과 떨어져 설레는 마음으로 한남동 경찰청 인권 보호센터를 향해 공직생활의 문을 두드린 지 한 달.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첫날 드디어 우리 인권보호계에 90년생이 왔네라고 감탄하신 계장님의 말처럼 90년생 공무원인 나는 올해로 나이 서른 하나, 내가 이곳에 오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더욱 좋아졌다는 말씀을 종종 듣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 나가게끔 노력하자 라는 격려라 생각하였다. 또 사무실에서 막내인 만큼 다른 동료, 선배 님들의 너그러움 속에서 하루빨리 업무에 적응해나가자는 다짐도 하였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큰 행사를 치르고 난 뒤 느낀 건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다 였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사람은 소수에 불 과하다. 대부분 모난 돌멩이가 세월의 풍파에 점차 둥글게 다듬어지듯이 지장 생활을 하면서 적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90년생들은 그것이 두렵기만 하다. 세상만사에 설명서라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학창시절과 수험생활을 거쳐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한 우리가 그 흔한 참고서 없이 현장에 투입되는 건 공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곳 인권보호계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내 감상은 생각보다 해 볼 만하다였다. 사실 처음 하는 일엔 누구나 낯선 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변에 괜히 동 료나 선배들이 있겠는가. 그렇게 도움을 받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아무리 업무능력이 미숙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궤도에 오르기 마련이리라,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 쑥스럽지만 그래도 그전보다는 훨씬 업무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먼 신임 공무원이지만 우리 90년생 공무원이 제 몫을 하는 그날이 온다면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된 90년생 공무원이 왔다」의 후속작으로 진짜 90년생 공무 원이 왔다」라는 책이 나올 땐 진짜 이들이 오고 나서 공직사회가 더 혈기왕성해졌다 라는, 말이 실리지 않을까. 그런 작은 바람이 있다.
        글. 인권보호담당관실 김구 행정관
        * 20021년 국가공무원 일반행정직(경찰청) 9급은 약 400명, 그중 열 명이 경찰청에 배속되었다. 
        ** 다행히 나의 경우엔 첫날부터 전임 행정관님께 인수인계를 상세히 받아 사정이 좀 낫긴 했다.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예술로 만난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 1914.2. 21. ~ 1965.5. 6.
        빨래터, 1950년대 후반
        박수근은 동네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아내에게 반해 손편지로 고백을 했다. 그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이 업은 소녀, 1950~60년대 그림 속 소녀는 화가의 딸이다.몇 해 전 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였다. 특히 <아이 업은 소녀〉라는 작품은 엽서 크기만 한 박수근의 작품이지만, 작품이 주는 감동은 100호, 200호 이상의 작품이 주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 100호 사이즈 162x1300m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
        1950~60년대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 박수근은 독학으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에 서민의 일상을 담아 향토적이고 소박한 정서를 보여준다.
        빈곤한 집안 환경으로 중학교를 포기하고 혼자 그림공부를 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간 박 수근, 그의 대표작 <빨래터)는 2007년 경매에서 45억 2000만 원으로 낙찰되었지만 정작 박수근은 생전에 화실조차 없어 마루에서 그림을 그렸고, 변변한 개인전 한번 열지 못했다.
        열 평 남짓한 마루에서 종일 그림을 그린 화가는 수술비용이 없어 백내장이 악화한 뒤 수 술을 해 한쪽 눈은 잃었지만, 우리 이웃의 내면을 보며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화업을 이어갔다.
        화가에게 빨래터는 마을의 공동공간이자 소통과 만남의 공간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노 점상의 여인, 빨래터의 아낙들, 골목길 어린아이 등 그림 속 인물들과 소통하려고 했던 화 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고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그의 감정을 느낄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의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고난과 어려움이 공존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을 독특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은 미술에 소질은 없지만 감동받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옛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비 오는 여름날 우산을 가지고 버스 정류장에 마중 나가서 기다렸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그이와 같이 오는데 길에서 우산을 받고 앉아서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 세 분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없을 지나다 아이들과 일을 사다주자며 한 아주머니에게 및 , 다음 아주머니에게서 및 할 자기에 내가 비오는 데 한군데서 자지 그렇게 여기저기서 사느냐고 했더니 한 아주머니에게서만 사면 판 아주머니들이 섬섬해 하지 않아. 하면서 세 아주머니에게서 골고루 샀다. 그 이는 그 여인들을 늘 불광히 여겼고, 전후에 고생을 겪는 이웃들을 들 에치롭게 여겨 그 분의 그림의 소재가 노상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귀로, 1965년
        글, 문은영 학예연구사경찰청 인권센터
        편집 디자인 : 문은영 학예연구사 (saddy0412@pollc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