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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찰

두근두근 인권으로 in(인권소식지 3월호)
등록일 2020-05-01 16:29:58
부서명 본청 감사 인권보호 인권보호
조회수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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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인권으로 in 3 March @anna-onishchuk / unsplash 경찰청 인권센터人 사람×인권 경찰 - 바이러스는 공평하지 않다. 정윤정 경감 @daniele-levis / unsplash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일상을 잠식했다.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라는데 자세히 보면 바이러스는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나라마다 방역이나 의료 수준이 달라 사망률의 차이가 크게 난다. 어느 나라의 확진자는 치료를 받지 못해 가족에게 전염될까 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느 나라에서는 코로나19 검사비용이 400만 원에 이르러 돈이 없는 사람들은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포기한다고 한다. 손 씻기가 중요하다는데 먹을 물도 없는 오지에서는 손을 씻을 물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노년층에게 더 위험한 질병인데 역설적이게도 노인들은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을 통해 마스크를 구매하거나 실시간으로 구매정보를 공유하면서 쉽게 마스크를 구하지만, 노인들은 마트나 우체국에서 줄을 서서 구입해야 한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마스크 디바이드를 가져온 것이다. 함께하는 인권경찰@claudio-schwarz / unsplash 고용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사무직, 전문직 종사자들은 재택근무를 하거나 일을 잠시 중단할 수도 있지만 현장 근무자, 배달원, 식당 종업원 등은 외부에서 일해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누구에게는 잠시 불편한 문제가 일용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인류는 언젠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생존하지 못하고 추락한 사람들, 더 많은 타격을 입어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빠진 위기 극복은 진정한 극복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인권을 '고통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 려하는 합의와 연대를 우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권존중이 아닐까. 함께하는 인권경찰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니체, 여전히 기쁨은 부족하다 @chang-qing / unsplash隣 이웃 × 국민 [다시 읽는 인권위 결정례] 외국인도 기본권의 주체 : 인터넷 전화 이용 차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의 이름으로 말하다 (2011) [2020년, 우리나라에는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함께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10여년전 발간된 책의 내용을 통해 우리의 현 주소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2018년 말 기준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었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안전부, 2018년 11월 1일 기준) 다문화 사회다.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많은 민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가고 있다. 이를 위해 외국인들의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인이 헌법상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그렇다'라고 인정하고 있다.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은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고, 특히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은 대체로 '인간의 권리로서 외국인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며, 평등권도 인간의 권리로서 참정권 등에 대한 성질상의 제한 및 상호주의에 다른 제한이 있을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93헌마120, 99헌마494) 교회 전도사인 몽골인 A씨는 2009년 4월 한 통신사의 인터넷 전화 서비스에 가입하고 은행 통장 자동이체로 요금을 납부하겠다고 했으나 통신사는 외국인의 경우 신용카드 결제를 통한 요금납부만 가능하다고 했다. A씨는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장기간 거주해 주거지가 분명하고 수입도 일정하며 은행에 개인 계좌가 있는데도 은행 자동이체 요금납부를 제한한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통신사 측은 외국인의 경우 요금 미납시 연락을 취하기 어렵고, 거주지 또한 불분명해 미납 안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요금납부 방식을 신용카드 결제로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2009년 3월, 외국인 고객의 수납률은 46%에 불과해 동 기간 내 내국인 고객의 수납률 87%와 비교해 매우 낮은 실정이라는 점도 이유로 덧붙였다. 이 회사는 다른 두 개의 통신사가 외국인에게도 은행 자동이체를 허용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사업 규모 등이 달라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함께하는 인권경찰@rupixen-com / unsplash 인권위는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신사의 영업의 자유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더라도 외국인 역시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는다는 점을 부인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상당 기간 국내에 거주해 주거가 일정하고, 체류 기간도 많이 남아 있고, 안정된 직업이 있어 소득도 일정한 경우에는 수납률이 내국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사안별로 검토해 처리하지 않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요금납부 방식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피진정인에게 요금수납 시 외국인에 대해 은행 자동이체 납부를 거부하는 관행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차별은 고정관념이나 편견, 또는 선입관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함께하는 인권경찰仁 자애 × 경찰 - "경찰관이 건강해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영화 ‘감기’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겪고 있는 대구·경북의 경찰관들... 그 중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현장경찰관을 통해 경찰관의 삶과 애환, 사명감을 조명해 본다. 상황의 시작은 지난 달 28일 오후 3시 30분, 대구의 동부경찰서 안심지구대에 가정폭력 사건 신고가 접수되었다. 때마침 순찰 중이던 김흥식 경위와 이상철 경장, 중앙경찰학교 교육생 박유진 순경은 여느 때와 같이 현장에 출동했다. "제 아내는 신천지 신도입니다." 노련한 김경위의 지휘하에 가·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 유무 확인과 처벌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수행하는데, 가해자인 남편의 한마디가 순간 현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곧바로 함께 출동한 119구급대원이 체온을 재자 38.2도, 김경위와 동료들은 지구대로 복귀하지 못하고 곧바로 격리대상으로 분류되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인 3월 13일, 격리 마지막 날을 맞은 김흥식 경위와 전화 통화를 통해 대화를 나누어봤다. Q. 격리 마지막 날이라 들었는데, 먼저 건강은 괜찮은가요? A. 당시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 분이 '코로나19 양성 확진'되어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1차 검진결과 '음성'이고 오늘까지 이상 없으면 격리해제 되게 됩니다. Q. 지금 격리되어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요? A. 대구동부경찰서 대림치안센터로 신고 처리하고 현장에서 막바로 이곳으로 와서 격리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자가격리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가족들에게 전염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인권경찰Q. 폐쇄된 곳에서 보름 가량을 생활했는데 많이 불편하지는 않은지요? A. 밖으로 나가 활동하지 못하니 답답하고 가족들도 보고 싶고 합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고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싶습니다. Q. 아무래도 시설도 열악하고 식사도 부실할텐데 괜찮은지요? A. 최근까지 의경들이 사용하던 곳이고 방이 두 개인데 그나마 보일러도 잘 들어와 큰 불편은 없습니다. 식사는 배달되는 도시락으로 해결하는데 삼시 세끼를 먹다 보니 이젠 집밥을 먹고 싶습니다.(웃음) Q.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은데요? A. 네 많이 보고 싶습니다. 가끔 아내가 속옷 등을 챙겨와서 치안센터 앞에 두고 가면서 잠깐 보기도 하고 가끔 영상통화도 하고 하지만 늦둥이 열 살배기 아들 녀석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Q. 대구에 근무하는 다른 동료들도 많이 격리되었다고 들었는데요? A. 뭐 언론에는 130명 정도가 격리되었다고 하던데, 많은 동료들이 신고처리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확진자로 밝혀지면서 저희처럼 격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저희들은 이곳이 있어 좀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 대구 지역에는 최고 149명의 경찰관이 격리되었다가 3월 13일 자로 36명이 격리 되어 있는 것을 대구지방청을 통해 확인하였음. 김흥식 경위 이상철 경장 박유진 순경 함께하는 인권경찰Q. 오늘 오후에 격리 해제된다고 하는데 귀가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A. 가족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어서, 빨리 집에 가서 얼굴을 보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같이 먹고 싶습니다. (대구는 많은 식당이 휴점 하고 있고, 외식을 매우 꺼리는 분위기라고 함) Q. 귀가 하면 근무지로의 복귀는 언제하게 되는 건가요? 장기간 격리되어 있었는데 특별휴가나 그런 것은 없나요? A. 오는 일요일인 3월 15일 주간근무부터 지구대로 복귀하여 근무하게 됩니다. 대구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을(乙)호 비상근무 중이고 코로나19로 인해 타 근무지에 동원도 있고 해서 총력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상시국에 치안마저 불안하면 안 되니 저라도 빨리 복귀해서 일손을 보태야 합니다. Q. 현장 근무하는 경찰관들도 많이 불안할 텐데요, 경찰관들에게 마스크나 장갑 등 방호할 수 있는 물품은 잘 지급되고 있나요? A. 타 지역은 모르겠지만 코로나19 확산 전부터 지방청과 경찰서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선제적인 대응을 해서 그런지 마스크 등에 대해서는 큰 불편을 모르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구지방청에 확인해보니 마스크 등에 대한 긴급 수급조치로 인해 질병관리본부와 식약처 에서 대량을 매입해 가는 관계로 생산업체로부터 공공기관 구매가 쉽지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을 청취함 Q. 일반인이라면 외출 자제나 사람 접촉을 피할 수 있지만 경찰관이기 때문에 이런상황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A. 경찰관이라는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입니다. 이번 격리된 기간에 경찰관으로 입직 할 때부터 현재까지의 제 모습과 사명감, 꿈,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의 저는 경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Q. 그런 김경위님을 보고 가족들이 많이 걱정 안하던가요? A. 가족들은 걱정 많이 하죠. 하지만 제 소신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막내 아들 녀석은저를 쫓아 경찰관을 하겠다고 하네요(웃음) Q. 끝으로 이번 상황을 겪게 되면서 경찰 조직과 동료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으신가요? A. 국가 위기상황이니 만큼 모두가 협력하여 슬기롭게 잘 극복했으면 합니다. 모두 건강 관리잘하셔서 저처럼 격리되지 않도록 유의하시고, 대구 경북 많이 응원해 주시고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 부탁드립니다.보름 동안 격리되어 있던 동료이기에 혹시나 현장 상황을 모르는 가운데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안고 전화를 걸었지만 우리 현장 동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었음을 체감했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평상시보다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국민이 위급하고 도움을 필 요로 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바로 경찰관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경찰은 우한에서 들어 온 우리나라 교민들을 위해 기꺼이 시설(경찰 인재개발원)을 제공했고, 국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112를 누르면 신속대응팀이 달려가 방역을 도왔다. 또한 중국에 파견간 경찰 영사는 임기를 연장해가며 현지에 남아 교민들의 안전을 지켰고, 정년을 코앞에 둔 베테랑 경찰은 교민 수송 임무에 자원하여 기꺼이 운전대를 잡았으며, 비상 시국을 틈탄 마스크 판매사기나 매점매석 행위를 수사해 국민 불안을 덜어주는데도 제 역할을 다해왔다. 또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역할을 다하고 있는 대구 경북의 동료들을 응원하고자 전국의 경찰관이 한 마음으로 보내온 온정의 위문품들이 위기의 치안 현장 깊숙이까지 전달 되어 많은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상황을 계기로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현장 경찰관들에게 지급되는 마스크, 장갑 등 방호 물품은 필수 전략물자로 분류하여 경찰청 차원에서 관리하고 보급하는 체계를 갖추는 등 선제적으로 문제를 발굴하여 대비해야 할 것이다. 보름간의 격리를 마치고 귀가하는 김경위와 두 동료, 그들은 오늘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하고 서로 살아있음을 감사해하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앞서 곧 바로 치안 현장에 투입될 그들을 그려보며 필자는 생각해보았다. '경찰관이 건강해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글. 박원식 인권보호계장 함께하는 인권경찰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필름 안 인권" "모든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2019 며칠 전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관 앞에서 아내는 망설임 없이 진술서를 작성하고는 참을 만큼 참았다며 짐을 싸서 떠나 버렸다. 남편은 다툼으로 삭막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안은 채 끊임없이 아내의 험담을 했다. 황량한 거실 중앙에 그들의 결혼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행복한 미소, 마주 잡은 두 손. 그들이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확신, 믿음, 그리고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지금, 그들은 과연 어떤 이유로 그토록 매몰차게 등지게 된 것일까. 노아 바움백의 영화 <결혼이야기> 는 뉴욕에서 극단장으로 일하는 찰리와 그 극단의 여배우인 니콜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처음 두 인물이 서로에 대한 장점을 쓴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객들은 상대의 단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보완하고, 크고 작은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그들의 완벽한 결혼 생활을 보며 의문을 품게 된다. 아니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된 걸까. 관객들의 혼란스러움을 대변하듯 이혼 상담가는 둘에게 묻는다."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선택해야만 하나요?" 찰리는 대답한다.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면 간단하죠." 이혼소송을 위해 변호사 앞에서 첫 만남을 회상하던 니콜의 얼굴에 잠시 스치던 생기가 타오르다 만 불꽃처럼 황량히 사라진다. - 난 계속 찰리의 인생에 맞춰서 살았어요. 내가 살아난 게 아니라 찰리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 것 뿐이죠. 집안 가구도 모든 게 다 찰리 취향이에요. 내 취향은 없죠. 내가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찰리가 나를 응원해줬더라면 이혼까지 결심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찰리는 자신의 극단을 위해서만 내가 연기하기를 바랐어요. 찰리는 나를 비웃으면서 나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내 휴대폰 번호를 물어봤더니 기억도 못 하고 있더군요. 니콜은 남편과 아이를 위하여 희생했다. 그러나 그건 찰리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가족과 극단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과 창작의 고통 속에서 찰리는 여유를 생각할 틈조차 없다. 니콜 역시 한 가정의 어머니로, 또 아내로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으리라. 그녀의 선택이 낳은 결과에는 필연적으로 ‘가족’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직 자신의 나침반으로만 생의 방향을 결정하기에는 태중의 아이가 너무나도 중요했다. 끊임없는 희생, 이 부부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보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던 이유였다. 부부만의 각별한 유대감과 책임의식은 이혼 과정에서도 서로의 존엄을 지켜낸다. 찰리가 바빴던 것은 ‘무능하고 가정에 무관심한 아빠’로, 니콜이 하루 이틀 스트레스성 과음을 한 것은 ‘알콜중독’으로 무분별하게 변질되는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향한 연민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애틋한 연민이라고 해서 이기심을 이길 수는 없는 법. 니콜이 드라마를 위해 LA로 떠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을 고작 ‘상의’로, 자신의 극단을 위해 뉴욕에 남아 있어야 할 필요성은 ‘약속’ 이라고 표현하는 찰리에게 이혼 변호사는 묻는다. '찰리, 당신이 원하면 약속이고 니콜이 원하면 상의인가요?' 개인의 생각과 판단은 오직 개인의 입장과 특수성에서만 비롯된다는 인간 본연 이기심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직 단 한 번 운명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만나 생의 남은 시간을 함께 나누는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결국 부부도 하나가 아닌 두 명의 개인이고, 그러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상대에게 무한한 배려를 요구하는 인간의 욕심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가 더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지’ 겨루는 것은 결국 ‘누가 서로를 더 사랑했는지’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관심이 없다면 사랑은 없다. 사랑이 없다면 증오도 없다. 둘은 끝내 서로에게 무관심해질 수 없다. 그토록 끊임없이 ‘내가 당신을 더 사랑했어’ 라고 외치며 서로를 향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상대를 죽이기 위해 진심이 아닌 말로 내리꽂은 칼끝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다. 찰리와 니콜은 피를 흘리는 심정으로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린다. <내가 더 당신을 사랑했어, 내가 지금도 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상처라면 묻어두고 사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니콜과 찰리는 결국 이혼한다. 서로가 없는 일상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혼 상담가 앞에서 결국 읽지 못했던 니콜의 편지를 읽는 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삶은 끝나지 않았고 서로가 나누었던 시간은 영원 속에 남았으며 서로에 대한 감정은 사그라 들고 희미해졌을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지만, 서로를 기억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노래한다. 서로의 행복했던 시절과 서로의 페르소나였던 관계의 애틋함을. 사랑은 상대의 생각과 요구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한쪽의 희생으로 버티는 사랑은 수평이 맞지 않는 저울과 같다. 경찰관이 출동했던 사건 속 부부도, 영화 속 찰리와 니콜도, 균형 잡힌 둘만의 저울로 공평히 담고 공평히 나누어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사랑과 배려로 살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인간은 다르면서도 동등하기에 지고 이김이 없다. 관계에 있어 승패가 있다고 믿는 순간 그 관계 속 저울은 파괴된다. 관계란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지켜내야 할 관계가 있다면, 사랑만보다는 배려가 앞서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마법처럼 강렬하게 파고드는 힘이지만 배려는 스스로를 내어주는 포용의 힘이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키워가는 힘이기 때문이다. 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파주경찰서 운정1파출소 유진산 순경認 알다 X 문화 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독서 에세이 "책장에서 펼친 세상" 고미숙 <열하일기 :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고미숙 지음 휴일도 없이 방역 현장에서 비상시국을 보내는 분들에겐 참 죄송한 이야기지만 얼마 전부터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다. 빈번하진 않았지만 한 달에 두세 번은 되었던 모임도, 밥 한번 먹자는 연락도 뜸해졌다. 출퇴근을 위해 대중교통시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사무실 아니면 방구석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일상의 모습이다. 일과 가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소 그리던 삶이긴 한데 무언가 밋밋하다. 아차, 봄이 오면 일주일 정도 훌쩍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했었구나. 불현듯 항공권 예매사이트를 뒤지던 지난겨울 생각이 났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니 딱 지금이 그런 상황 아닌가. 늘어난 시간만큼 이런저런 책을 들춰보는 시간도 늘었지만 손이 가는 것은 거의 업무와 연관된 책들이다. 아아. 이것도 직업병인가 싶어 좌절하던 차에 〈열하일기〉를 만났다. 여행 대신 여행기는 어떠냐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다. <열하일기>는 조선의 문예 부흥기로 일컬어지는 18세기, 노론 세도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벼슬을 멀리하며 세상을 관조하던 당대의 프리랜서 연암 박지원의 저술이다. 고전이라는 게 해석본일지라도 원문을 읽어야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텐데 첫 만남부터 기가 눌리기 싫어 일단 고미숙 선생이 풀어낸 <열하일기 :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작은길 출판, 296p)으로 시작했다. 살다 보면 원문을 완독할 날도 있겠지. 연암이 연경(지금의 북경)을 거쳐 열하를 가게 된 것은 마흔이 훌쩍 넘어서다. 그것도 벼슬을 하는 친척 덕분에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연 사절단 일행으로 운 좋게 합류하게 된 것이다.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건륭제는 자신의 칠순 생일을 맞아 열하로 피서를 떠나 있었고 조선의 축하사절을 불러들였다.박지원이 걸었던 길 <열하일기의 행로> 당초 목적지였던 연경에서 말을 타고 5일이나 더 가야 하는 길. 연암은 고행이나 다름없는 여행 중에도 세세한 경로와 함께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은 물론, 현지인과 나눈 대화, 역사, 문화, 음악, 풍속, 예술과 과학기술 등 선진 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과 통찰을 섬세하고도 해학적인 필치로 남겼다. 나 역시 여행지에선 인증샷과 탐식에 집중하다가 돌아와서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 중에 하나지만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하면서도 붓 하나로 이런 기록들을 남긴 연암이라는 사람의 면면에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암이 살던 18세기는 주류 지식인들 사이에서 북벌론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북벌론은 사실상 청에 대항할 힘도 없으면서 말로만 '정벌'을 외치던 내치용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연암은 존명반청(尊明反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꼬집으며 청에서 본 기왓장 하나에도, 똥 무더기에도 배울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깨진 기왓장으로 벽틈을 메꾸고 말똥을 모아 거름으로 사용하는 실리적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열하일기>는 연암이라는 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한 업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연암은 과거급 제의 뜻을 접고 어린 시절부터 저잣거리로 나가 신분과 귀천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서른 살 무렵에는,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라 일컬어지는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박제가 등과 어울리며 북학실학파의 중심에 있었다. 연암의 저술이 시대를 넘어 감동을 주는 것은 스스로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기성의 질서에도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낡은 이념이나 관습보다 인간의 삶과 존엄함을 가장 우선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연암이 계급과 신분질서, 교조적 성리학에 매몰된 사람이었다면 〈열하일기〉같은 탁월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몇 줄의 글만으로 수백 년 전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던 지식인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가 남긴 정신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어차피 올봄을 느긋한 여행으로 보내기는 글렀다. 시간 날 때마다 방구석에서 연암의 여행기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비록 몸은 방구석 이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글. 이준형 경감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예술로 만난" 꽃과 자연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Georgia O'keeffe (1887 - 1986) 달로 가는 사다리 Ladder to the Moon, 1858년어린 시절 크고 환한 달을 보며 저긴 어떤 곳일까. 궁금했던 경험이 있다. 달에 정말 토끼가 살고 있는지, 정말 노란색인지도 궁금했다. 동이 터오르기 전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창밖으로 바라본 달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오키프의 세계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한 反추상주의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70여년 동안 미국 예술계의 주요인물이었다. "아무도 꽃을 보지 않아요, 제대로 너무 작아서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에요.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요." 화가는 꽃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캔버스 가득 확대한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꽃은 그녀의 그림에 주제가 되고 의미가 되었다. 1887년 위스콘신주 선프레리 근처에서 태어난 오키프는 여러 학교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후 1911년에서 1918년까지 미술교사로 활동하였다. 1916년 사진작가이자 갤러리 291의 소유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만나면서 화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유의 여성적인 힘과 모더니즘을 당시 평론가들은 성적인 메시지로만 해석하였지만, 오키프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결국 오키프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가진 최초의 여성화가이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선정한 14명의 미국 거장에 포함된 유 일한 여성화가라는 기록을 만들어 냈다. 이 그림은 오키프가 71세 되던 1958년에 그린 작품으로 미국 뉴멕시코주 아비키우에 있는 자신의 낡은 벽돌집에서 그렸다. 마당 한쪽 벽에 걸쳐져 있던 사다리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취미였던 오키프는 어느 날 사다리를 타고 달에 닿으려고 했던 건지, 화면에는 새벽녘 푸른 하늘과 날고 있는 사다리, 그리고 반달이 눈에 도드라진다. 달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원해도 닿을 수 없는 달이지만 푸른 밤, 노란 달은 오히려 따뜻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평범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하고 싶다고 모두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가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화가로서의 삶을 살다 1986년 98세, 자신이 사랑했던 사막 뉴멕시코에 한줌의 재로 뿌려졌다. 함께하는 인권경찰@monique-carrati / unsplash 경찰청인권센터 Korean National Police Agency Human Rights Center 편집·디자인 : 문은영 학예연구사 [saddy0412@police.go.kr]